최근에 디어에서는 동물권과 관련된 작은 이슈가 있었다.
디어는 삼성동 주택단지의 3층 주택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비둘기들이 항상 옥상에 모여 있고, 비둘기 똥이 주차장 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원래도 비둘기 똥 때문에 위생적인 문제가 심했는데, 문제의 그날에는 비둘기들이 주말에 세차를 마친 희욱이의 차에 똥을 가득 싸놓고 갔다. 희욱이는 호스로 차에 묻은 똥을 모두 닦아낸 뒤 비둘기 똥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자는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다소 거칠게 느껴질 수 있는 의견이 곳곳에서 나왔다. 결국 비둘기 스파이크를 설치하기로 결정됐다.
며칠 뒤 덕수, 지원, 상아가 쭈뼛쭈뼛 찾아오더니 혹시 잠시 시간 되냐고 물어봤다. 옥상에서 이야기 나누자며 함께 걸어 올라갔는데, 셋 사이의 공통분모가 도저히 생각이 안 났다. 조심스럽게 말을 뗀 그들은 최근 비둘기 스파이크 설치 과정에서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비둘기가 실제로 피해를 줬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비둘기를 하나의 생명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디어는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이고, 항상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조직을 지향한다. 그렇다면 같은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더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리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서.
여러 대화의 끝에, 특정 사람에게 피드백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좋은 방식이 있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 덕수는 며칠 정도 고민한 뒤에 아래와 같은 공지를 했다.
많은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비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비호를 넘어서 혐오감을 느낄 때도 참 많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과연 동물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이렇게 가볍게 생각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 물론 어쩔 수 없이 스파이크를 설치할 수도 있지만, 해결 방안과는 별개로 논의가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진행되어도 괜찮은 걸까? 하는 걱정도 들었어.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선뜻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과연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게 배려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하는 데에 시간을 쓰는 것이 가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논리적으로 답변하기가 무척 어려웠기 때문이야. 그래서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기 위해서 책을 한 권 읽어보려고 해. 함께 읽고 싶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글을 올렸어.
읽고 싶은 책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야. 책 모임을 진행할 예정이고, 아래와 같이 진행하려고 해.
덕수가 어떤 고민을 거쳐 봤을지 추측해 봤다. 자신이 느낀 불편함이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지 고민했고, 자신의 신념과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해도 될지,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고민했고, 스스로도 명확하게 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스스로 공부해 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함께 공부해 보자고 사람들에게 제안을 했다.
덕수는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고 간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본인이 이런 고민을 했다는 사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독서 모임에 몇 명이라도 참여한다면 이다음에는 본인의 신념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생길 수 있다.
덕수의 부드러운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덕수가 이 커뮤니티를 신뢰하기 때문에 이런 부드러운 해결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덕수도 디어도 그리고 나도 함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