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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의 나침반 (안티프래질, 나심 탈레브)

작성일
2023/07/22
상태
Done
말 많은 괴짜 아저씨의 이야기를 며칠 내내 들었다. 중간중간 딴 생각에 빠지기도 했고, 쓸데 없는 말은 스쳐 듣기도 했다. 왜 이렇게 횡설수설하지 싶어서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괴짜의 이야기는 즐겁다. 즐거운 이야기는 내게 남기는 게 있다. 수많은 단어를 들어도 결국 내게 가장 인상 깊은 몇 개의 문장만 가장 단순하게 남게 된다.
안티프래질은 새로온 삶의 나침반이 될 수 있겠다. 다만, 그 나침반에는 지침이 없다. 그리고 방향 표시도 없다. 비어 있을 뿐이다. 그게 날 기쁘게 한다.
안티프래질을 읽고 머릿속에 남은 것은 다음과 같다.
1) 가변성을 사랑해라. 그리고 안티프래질을 가져라.
2)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에 비해 낫다.
3) 오래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유행 좇지 말자.
이 단순한 몇 개의 문장을 위해 나심 아저씨는 여러 개념과 그를 설명하는 수많은 일화와 예시를 들었다. 대부분의 개념은 본인이 직접 단어로 정의한 것인데, 처음 단어를 설명할 때에는 그 설명이 매우 단순해서 이해가 어려웠다. 결국 수많은 일화와 예시들이 개념들을 추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사랑하는 어구 중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는 게 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도를 도라 말할 수 있으면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면 이름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추상적인 개념에서 한없이 멀어짐을 일컫는 말이다.
나심 아저씨는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개념을 명확한 단어로 정의하지 않고 일화와 예시들을 전달하며, 그 중심에 있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길 기대한 것 같다. 이 개념이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걸 함께 보여준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 남은 세 가지 문장 중 1)은 가끔 그렇게 하기도 가끔은 정반대로 하기도 했던 것이고 2)는 대부분의 상황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고 3)은 최근에야 비로소 여러 상황과 주변인들 덕분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가변성을 사랑해라. 그리고 안티프래질을 가져라.

인생의 여러 선택을 돌아보면 스스로 마음에 드는 선택은 대부분 가변적이고 안티프래질한 것이었다. (사실 선택의 대부분이 가변적이었다는 생각을 했지만, 잘못된 선택과 그 결과는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 때문에 내가 한 선택이 대부분 가변적이었다는 게 편향일 가능성이 커서 ‘스스로 마음에 드는 선택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대학교 진학 때 국어교육과와 국어국문학과 중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한 것
국어교육과는 진로가 정해져 있어 프래질하다.
진로를 처음 고민할 때 PD, 기자, 잡지 에디터, 광고 카피라이터 등 다양한 영역을 넓게 펼쳐본 것(사실 이 네 직업은 공통점이 명확하긴 하다) 그리고 바로 직업으로 선택하기 보다는 가역적인 테스트를 통해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한 것(직접적으로는 학교 방송국에서 일하기, 잡지 창간하기. 간접적으로는 아버지 친구들 중 저 직업을 가진 사람 만나보기)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적을 명확히 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은 프래질하다.
잡지 에디터 인턴에 떨어졌을 때 별 생각 없이 휴학을 유지하고 재밌어 보이는 창업 교육에 참가한 일
창업/기업이라는 걸 전혀 모르던 상태였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창업 교육에 참가하는 일이 훨씬 안티프래질한 일이었다.
학생 시절 창업을 한 일. 그리고 창업을 반복한 일
학생 시절의 창업은 실패를 반복하게 해주고, 그 실패는 성장을 만들어 준다. 하방 리스크가 막혀 있는 안티프래질한 일이었다.
창업을 그만두고 적은 연봉의 신입으로 취업한 일
기존에 창업한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일이지만, 경력을 인정 받기 위해 고집 부리는 건 프래질한 것이었다.
크게 성장하는 조직에서 업무 범위가 좁아지는 것을 느끼고, 작은 조직으로 옮긴 일
업무 범위가 좁아지면 관점이 좁아지기 쉽고, 이는 나를 프래질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선택들을 하는 중간중간 지나치게 목적성을 가지고 그곳에 나를 몰아 넣거나, 나의 선택이 단기적으로 아쉬운 결과를 만들 때 지나치게 힘들어 했다. 창업해서 일하던 시절 가변성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얻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 돌아보면 장기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다. 오히려 그 스트레스는 내 성장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단순한 것이 복잡한 것에 비해 낫다.

가끔 ‘왜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해?’라는 비난조의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나는 보통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잠시 고민한 뒤에(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는데, 사실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은 ‘잠시’였던 것 같다.) 바로 답을 내리는 편이다. 스스로는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했지만 주변인과 관계를 맺다 보면(특히나 깊은 관계, 애인 또는 가족 관계 같은) 단순하게 결정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소리를 오래 들어 왔다.
내가 잘못되었나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지만, 결국 나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걸 더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크게 잘못된 결과를 내지 않았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특히나 효과적이었던 건 미래를 고민할 때다. 미래에 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고민을 하다 보면 수많은 걱정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이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말이 있다. ‘걱정할 때와 걱정하지 않을 때를 비교해 보자. 걱정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것이 진실에 가까운 수정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걱정을 해도 안 해도 결과가 똑같다면 걱정을 하지 않는 게 결국 더 좋은 일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결정을 하고 살아나가면 문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크게 타격이 없다. 그저 문제를 대응할 뿐이다. 앞으로도 단순하게 살 수 있길 바란다.

오래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유행 좇지 말자.

창업 교육을 들으며, 직접 창업을 하며 스타트업이 무엇인지 IT가 무엇인지 배웠다. 창업을 하고 엑싯을 하고 돈을 버는 프로세스.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방식 등을 들엇고, 주변의 대부분이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 채워졌다. 내가 있는 곳이 소수의 영역이라는 걸 깨닫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최근 몇 년 동안 모두가 옳다고 외쳤던 방식(빠른 외연 확장, 매출 보다는 MAU, 투자는 빨리 크게)이 몇 개월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생각보다 더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우연히 디어(지금의 회사)에 오게 되었다. 이 회사의 대표는 이상했다. 사업가로서 워렌 버핏을 가장 존경했다. 내가 외연 확장에 빠져 있는 동안 장기적인 사고와 현금 흐름을 되뇌어 온 사람이었다. 새로운 기술, 최근 뜨거워진 이론 같은 것들 보다는 상행위의 본질 그리고 오래된 고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회사의 비전이나 미션 같은 것들을 명문화하지 않았고, 사업적인 목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뭐든 다 바뀔 수 있는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어떤 때는 A가 맞다고 하면서 어떤 때는 B가 맞다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였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완전히 반대에 있는 생각이어서 필터 없이 받아들여 봤다. (사실 오롯이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고, 대체로 내가 하는 말보다 더 많은 근거가 있어서 반강제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일 년 정도 장기적인 사고를 가지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장기적인 사고를 조금 배웠다. 행동을 하는 것보다 가만히 서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나을 때가 있고, 지금 문제가 터져도 길게 보면 별 일 아닌 경우도 있다. 최근 유행하는 것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증명된 것을 믿는 게 더 바람직하고, 새로운 것들을 잠시 무시해도 별 일 생기지 않는다.
대학 시절 도가 사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던 노자 <도덕경>도 그때 배운 거다. 당시에 정말 사랑한 단어가 하나 있다. 장자가 제시한 ‘소요유’다. 소요유는 별다른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며 노는 것이다. 장자는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했다. 혼란스러운 속세에서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며 노는 삶. 안티프래질에 나오는 ‘여행가’로서의 삶이 겹쳐진다.
대학교에서 내일로 티켓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여행 계획서를 내야 했는데, 팀명을 ‘소요유’로 했다. 그때는 ‘소요유’라는 개념에 함께 꽂혔었다. 감사하게도 내일로 티켓을 받았고, 목적 없고 생각 없이 아무런 역에서 내려 보기도 하고, 그냥 정처 없이 걸어다니기도 했다.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다.
부도 없고 명예도 없는 우리는 정처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웠다.
비즈까페 독서모임 1회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