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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할 회사를 선택한 기준
🐄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

작성일
2022/12/18
상태
Done
‘HR 주니어 스터디’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전까지는 주변에 HR 업무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터디에는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 철도/에너지/콘텐츠/금융/게임 등 규모별 산업별 다양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철도 회사에서의 재택근무 이슈라거나 단체협상을 통한 연봉 협상 등 생소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신기해했었다.
스터디 리더와 가끔 연락하고 안부를 묻곤 했는데, 최근 연말 기념으로 스터디원들과 모임을 한다고 오겠냐고 연락이 왔다. 대부분의 사람과 온라인으로만 만나기도 했고, 스터디에 참여하지 않은 지도 너무 오래돼서 조금 고민했는데 그래도 다른 회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참여했다.
IT 스타트업이라는 한정된 시장에서만 일했고, 주변 사람들의 백그라운드도 비슷하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이번 모임을 참여하며 역시 내가 보는 세계는 정말 좁다는 걸 느꼈다. 그 사례를 기록으로 남겨두려 한다.
에너지 산업의 대기업에 다니는 분과 대화를 나눴다.
그 회사는 총인원이 300명 정도인데 연 매출이 1조 원이 넘고 영업이익이 2,0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럼, 1인당 영업이익이 6억 원 정도가 된다. 처음에는 슈퍼맨 같은 사람들로 모여 있는 회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매일매일을 밀도 높게 보내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는 그런 슈퍼맨. 하지만 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 회사는 풍력, LNG 등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회사이고 B2B 사업이 메인 비즈니스 모델인데, 클라이언트는 한국전력공사 딱 하나라고 한다. 그럼, 결국 회사가 자체적으로 새로운 수익 채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우가 매우 적을 것 같았다. 여쭤보니 실제로 그랬다.
매년 채용 규모를 알아보니, 20명 내외였다. 경력직이 아닌 신입 공채로 대부분 진행된다고 한다. 퇴사자도 매우 적고. 이 회사는 사람을 채용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역량이 뛰어나고 주도적인 사람인가 보다는 그 사람이 얼마나 퇴사하지 않고 회사에 오래 근속하며 필요한 일을 잘 수행해 낼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럼, 사람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무엇이냐 물으니 결국 ‘연고지’라고 했다. (물론 기본적인 인성이나 역량은 다 보지만) 그리고 좋은 대학교를 졸업한 것보다 채용 지역을 연고지로 가진 사람이 그 지역에서 대학까지 나온 경우가 최고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연고지에 거주하는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혼자 사는 게 외로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의 빈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채용하는 지역을 연고지로 가진 사람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이상 일을 꾸준히 잘 수행해 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 회사는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지금의 비즈니스를 문제없이 탁월하게 운영해 줄 사람이 더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채용을 했다.
스타트업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는 정말 보는 게 많고 까다롭다. 0 to 1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끈기와 체력도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똑똑함도 바란다. 정말 극초기에는 이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는 게 성공 확률이 높긴 하다. 근데 규모가 성장하다 보면 결국 운영 업무를 완전하게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에서는 이 ‘운영의 완전함’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냄’보다 아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과거 운영 일을 조금이라도 해보기 전에는 그랬다.)
창업을 하고 또 창업을 하고 스타트업에 근로자로서도 근무하며 결국 깨달은 건 ‘소를 키울 사람’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내고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내도, 결국 이를 문제없이 운영할 사람이 없다면 사업은 돌아가지 않는다.
사업이 커지고 안정화될수록 ‘소를 키울 사람’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디어에서 ‘소를 잘 키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고 어떻게 채용해야 할지도 잘 고민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