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 형이 날 잡고 사무실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다 처리해 버리자고 했다. 구석구석 용도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널브러져 있고, 어떤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정리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 일하는 방식에서도 나타난다고. 애매한 것들은 다 버려 버리자고 했다.
회사 환경을 개선하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일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고 어느 정도 리소스를 써서 언제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얼마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진 않으니 어떻게 진행할지 조금 더 정한 뒤에 시작하자고 했다. 현수 형은 일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더 고민해서 똑똑한 방법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과 생각 없이 실행해서 일단 끝내버리는 일. 그리고 이 일은 생각 없이 실행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일단 쌓여 있는 문제들을 청산해야, 그다음 똑똑하게 개선하는 게 가능하다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문제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니 토요일 오전에 바로 모이자고 했다. 사람들에게 공지는 하되, 굳이 더 모으고 일정을 조율하지는 말자고.
토요일 오전에 모였고, 우선 모든 서랍장 안에 있는 것들과 방치된 것들을 층별로 모으기 시작했다. ‘혹시 나중에 쓸 수도 있으니까’가 모여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 가득 찬 것이기 때문에 일단 모두 모아 놓은 뒤, 꼭 필요한 것만 다시 서랍장에 넣고 나머지는 다 버리기로 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나중에 사는 것으로.
정리하는 과정. 버려야 할 것투성이다.
부서진 서랍장을 버리고, 꼭 필요하지 않은 가구를 버리고, 책을 한군데로 모았다. 회사에서는 정말 특이한 물건들이 넘치게 나왔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여행 캐리어, RC카, 짐볼, 유통기한이 6개월 지난 라면, 새 헬멧 한 박스, 퇴사자가 남기고 간 개인용품, 커다란 카펫, 빔프로젝터, 오래된 공기 청정기. 명확하게 다시 사용할 것 외에는 다 밖으로 내놨다. 그러니 아래만큼의 쓰레기가 나왔다.
사무실을 비우고 보니,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면 더 좋을지 상상이 더 잘 되었고, 당장 처리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난 3층을 주로 맡아서 정리했는데, 공간을 두 개로 나눠서 한쪽은 no-shoes zone으로 만들겠다는 결정을 했다. no-shoes zone으로 지정한 공간은 1)일정 인원 이상이 모여서 회의할 때, 2)밥 먹을 때, 3)휴식할 때 활용하고 있다.
세 경우 모두 불편함이 있다. 1)의 경우, 계단같이 생긴 공간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모이면 계단 바로 아래 공간에 신발이 너무 쌓여서 지저분해지고, 적은 사람이 모일 때는 신발을 벗는 게 귀찮아서 2~3층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죽은 공간이 많아진다. 2)의 경우, 바닥에 앉았을 때 지저분한 바닥에 다리가 닿아서 위생적으로 좋지 않고, 그래서 불편한 높은 의자에 앉는 사람이 많다. 3)의 경우 의자 두 개 외에는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No-shoes zone을 만들고, 신발장을 따로 구비하면 1)~3) 용도로 활용할 때의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구석에서 발견한 카펫들을 활용해서 공간을 조성해 봤다.
공간을 지정하기만 한다고 제대로 돌아가는 건 아닐 것이고, 이 방법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3층 공간의 DRI를 맡아서 한 달 동안 팀원들에게 이 공간의 목적을 설명하고 그들이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려 한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 다른 장치를 만들어 내거나, 아예 처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3층의 no-shoes zone
현수 형의 말이 맞았다. 고민 없이 일단 다 처리해둔 뒤에 생각해야 하는 일도 있다. 특히 문제가 쌓여 있는 경우에는 다 엎어버리고 비워낸 뒤에 처음부터 생각하는 게 나을 수 있다.
1톤 트럭으로도 부족할 정도의 쓰레기가 실려 나가는 걸 보며 주말을 기분 좋게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