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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 회사 정말 반말 해? (입사 4개월 차의 후기)

작성일
2022/12/04
상태
Done
제가 일하고 있는 디어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 반말을 합니다.
채용 페이지 나와 있는 ‘반말 대화’ 문화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어보더라고요.
“진짜 서로 반말을 해요?”
채용 페이지에 나와 있는 ‘반말 대화’
이 물음은 보통 둘 중 하나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요,
1.
‘회사에서 서로 반말을 한다는 게 낯설고 상상이 안 된다. 채용 페이지에만 그렇게 나와 있지 실제로 반말을 하진 않을 것 같다. 실체가 궁금하니 물어 봐야지.’
2.
‘회사에서 반말을 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별로일 것 같은데. 현실이 궁금하니 물어 봐야지.’
최근 전 직장 동료와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눴는데, 다음 날 아침 이런 메시지가 왔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위 이유 중 2번에 해당하는 물음이었다고 합니다.
‘윈’은 제가 전 직장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입니다.
그동안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짧게 설명하곤 했었는데 이날따라 최대한 자세하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장문의 답장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정리해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글을 읽기 전 아래 주의사항을 꼭 읽어주세요.
저는 디어에 합류한 지 이제 4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아랫글은 ‘디어가 서로 반말을 사용하기로 한 이유’보다는 ‘신규 입사자가 4개월간 반말 문화를 겪어본 뒤의 후기’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사의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개인의 의견입니다.

요약

반말로 대화해 보니,
1.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인간 사이의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
2. 서로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보장해 주게 된다.
3. 친밀감이 빠르게 생긴다.
회사에서 사람과 사람이 새로 관계를 맺을 때 ‘회사에서 부여받은 일에 대한 권한과 책임’ 즉, ‘역할’을 바탕으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회사라고 해도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역할에 따라서 위계가 느껴지곤 합니다.
흔히 회사에서 사람 사이에 생기는 문제는 역할을 인간 사이의 위계로 활용하거나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주지 않을 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수평적인 소통’과 ‘수직적인 의사결정’을 채택하곤 하는데,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사이의 위계를 없애는 것’과 연결되고, ‘수직적인 의사결정’이 ‘역할을 존중하는 것’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수평적인 게 무엇이고 수직적인 게 무엇이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한 주제라고 생각되어,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경험한 디어의 반말 문화도 결국 ‘소통과 의사결정’을 더 잘 할 수 있게 동작하고 있습니다.

1. 역할이 인간 사이의 위계를 만들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리멤버나 블라인드 등의 직장인 커뮤니티를 읽다 보면 ‘팀장이니까, 임원이니까, C레벨이니까’라는 이유로 충분한 근거를 들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일 또는 하대하는 일을 발견합니다. 극단적인 경우도 종종 보이고요. 이 상황에서 하위 레이어에 있는 사람들은 역할에 눌려 힘들어합니다.
물론 회사에 따라서 소통이 꼭 수평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걸 훨씬 선호합니다. 또한, 겪어 보지 못한 문제와 마주하는 스타트업은 서로의 생각이 어떤 근거가 있는지,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끊임없이 물어봐야 한다고 봅니다.
디어에서는 서로 반말을 함으로써 역할과 인간 사이의 위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 팀 리드는 제가 하는 업무들에 대해 매니징하고 방향을 조정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저보다 높은 곳에 있지는 않습니다. 이게 일하며 소통할 때 서로 편하게 피드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저에게 디어의 대표는 ‘동은이 형’이고, CSO는 ‘재호 형’이고 피플팀 리드/부대표는 ‘재석이’입니다. 이들이 어떤 의견을 냈을 때 이해가 안 되면 편하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제가 요청할 게 있을 때도 편하게 할 수 있고요.

대표(동은이 형)와의 대화

이전 회사에서는 대표와의 대화 시간이 필요할 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이건 저 혼자 느꼈던 것일 수도 있지만요. 지금 회사에서는 분명 규모가 작아서도 있겠지만 훨씬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래 같은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CSO(재호 형)와의 대화

입사 2일차에 디어 CSO 재호 형과 채용 관련 미팅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재호 형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왜 디어에 왔는지, 팀에서 어떤 사람을 채용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최대한 밀도 있게 대화하고 싶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C레벨과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 부담이 컸습니다.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고 조직 위계상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느껴졌거든요.
디어 CSO 재호 형과의 첫 만남 때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재호 형, 나 형 그리고 물류 신사업팀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혹시 오늘 1~2시간 정도 시간 괜찮아?”라고 말하고 티타임을 잡았습니다. 재호 형의 커리어와 디어에 합류한 이유, 가족 이야기, 물류 신사업팀의 사업 방향과 채용이 필요한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계가 느껴졌다면 몇 시간 이상이 지나도 어려울 이야기가, ‘서로 반말을 한다(=편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라는 사실만 바뀌니 1시간 30분 만에 끝났습니다.
이외에도 일하는 순간순간 소통이 막힌다는 느낌이 든 적이 거의 없습니다. 특히,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까지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반말 대화’가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여준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2. 서로의 ‘권한과 책임’을 더 명확하게 보장해 주게 된다.

일의 권한과 책임(역할)은 정말 중요합니다. 일을 책임지는 담당자에게도, 팀을 이끄는 리더에게도요. 회사에서 서로의 역할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일을 맡겼지만, 믿지 못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경우거나, 리더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반말을 하는 게 오히려 서로의 역할을 보장해 주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반말로 대화하는 것 기저에는 서로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로 믿지 않고서는 반말을 편하게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디어에서 리더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를 맡은 담당자를 신뢰하며 일을 위임하고, 팀원은 리더가 ‘피플 매니징’이라는 일에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일에 책임을 다하고, 리더는 제가 일을 잘 끝낼 수 있도록 중간중간 피드백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줍니다. 리더와 저 사이에 위계가 없고, 서로의 역할만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건 반말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측면으로 보장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DRI인 일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끝마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DRI가 모호한 경우 제가 먼저 맡아서 끝내겠다고 선언하기도 쉽습니다.
최근 ‘신규 입사자 정보 처리’의 DRI가 애매할 때 DRI를 정리하려 보낸 메시지
위 두 이유가 ‘반말 대화’를 통해 회사들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가 사라진 사례입니다. 사실 그 외에 그냥 좋았던 점이 또 따로 있습니다.

3. 친밀감이 빠르게 생긴다.

회사는 인생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입니다. 혹자는 ‘회사 사람들은 그냥 회사 사람들일 뿐이다. 일하기 위해서 함께 모인 사람인데 그 인간관계에 왜 신경 쓰고 중요하게 여기냐?’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왕 일하는 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여 있는데, 이 사람은 왜 이 목표에 집중하는지 더 알고 싶고 이것저것 다양한 주제로도 즐겁게 대화하고 싶습니다.
서로 낯선 사이지만 같은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 누나, 동생 관계를 맺습니다. 서로 편하게 반말로 대화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편하게 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안전감이 자연스럽게 생기고 서로의 인간적인 외로움을 끌어안아 주기도 합니다.
디어 사람들은 주말에 만나서 등산을 가기도 하고, 평일 저녁에 볼링을 치러 가기도 하고, 함께 방탈출을 하러 가기도 합니다. ‘회사 사람’과 간다기보다는 ‘친한 사람’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자연스럽습니다. 서로 특별히 접점이 없어도 반말로 인사하고 몇 마디 대화하다 보면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도 생깁니다. 특히 저는 물류 신사업팀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원진이 형과 왠지 모를 친밀감이 있습니다. 앞으로 디어가 몇 년 지나도 함께 일할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은 사이입니다. 근데 회사에 오면 그 형이 있고, 잘 안 보이면 영업이 바쁜가 생각하고, 그러다 마주치면 더 반갑게 인사합니다. 요새 하는 일 잘 되는지도 궁금해서 물어보고요.
그 장소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제가 회사를 즐겁게 다니는 이유 중 하나를 차지합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함께 갈 사람을 구했다. 생각보다 인기가 없어서 셋밖에 모이지 않은 건 아쉽지만…
사실 위에서 말한 것 모두 ‘반말 대화’를 해야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서로 존댓말을 하면서도 셋 모두를 만족시키는 회사가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반말 대화’를 한다는 게 이를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솔루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반말 대화를 통한 문제점이 생길 여지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디어는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가 깨질 것 같다면 반말 대화를 언제든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결국 중요한 건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문화이고, 반말 대화는 이 문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문제가 생기지 않고 반말 문화가 오래오래 잘 유지될 방안을 열심히 고민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