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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할 회사를 선택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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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함께할 회사를 선택한 기준

작성일
2022/11/27
상태
Done
2022년 봄, 이직을 결심했다.
회사에 특별히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 2년 정도 있다가 다음 회사로 가겠다고 생각했었다.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서 그 시기가 조금 당겨졌을 뿐이다. 돌아보면 참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싶긴 하지만.
매스프레소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전체 인원이 160명일 때 합류해서 330명일 때 퇴사했다. 채용 담당자로서 이 정도의 스케일업을 경험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마케팅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경험도 했고, 공개채용도 진행했고, 2명이던 채용 담당자가 7명까지 늘어나는 것도 경험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있었고, 작은 아쉬움들이 퇴사를 결심할 때는 명확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다음 회사를 선택할 때는 그 갈증을 채워줄 수 있는 곳을 원하게 됐다.
최근 지인이 이번 이직 시즌에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었는지 물어봤다. 이참에 글로 정리해 본다.
채용 조직이 7명이던 시절
목차

나의 네 가지 기준

총 네 가지 기준을 가지고 회사를 바라봤다. 당시에는 모두 동일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보니 세 개는 무게감이 있었고, 하나는 막연한 바람 정도였던 것 같다.

1. 돈을 버는 회사인가?

돈을 버는 회사에 가고 싶었다. 한 번도 돈을 버는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 생존을 위해 외주 개발로 돈을 번 적은 있으나, 의도한 비즈니스 모델로 꾸준히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회사의 미션과 비전은 회사가 지속 가능할 때 달성할 수 있다.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단기적인 수익이 아닌 장기적인 수익이 더욱 중요하다.
돈을 벌지 못하는 회사는 외부 환경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그렇다 보니 내가 하는 계획이나 기획이 모두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 회사는 돈을 어떻게 벌고 있으니, 그 아래에서 나는 어떤 일에 어느 정도의 기간과 돈을 쓰겠다.’를 정하는 게 어려웠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 돈을 직접 벌기보다는 돈을 쓰는 일이었다. 직접 돈을 못 벌다 보니,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회사가 자금을 원하는 시기에 항상 끌어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내 경험이 쌓일수록, 외부 자금을 원할 때 알맞게 가져올 수 있다는 걸 100%로 믿는 건 내 앞날을 신에게 기도하고 믿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기 비즈니스로 돈을 버는 회사, 연 2~30억 이상은 벌고 있는 회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2. 내가 영향력을 충분히 미칠 수 있는 규모인가?

매스프레소 이전에는 10명 미만의 조직에서 일했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갔다. 내가 대단해서는 아니고, 10명 미만의 조직에서는 누구든 하나가 없으면 회사가 잘 안 돌아갔다. 당시에는 이 사실이 너무 힘들었고, 편하게 하루 쉬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매스프레소에서는 하루를 편하게 쉬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한 달 정도 쉬어도 별일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팀원들이 내 빈자리를 모두 메꿔줄 수 있다는 게 기쁨과 안정감을 주면서도 왠지 모를 아쉬움을 주었다. 동시에, 조직이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일의 범위가 줄었다. 범위는 줄고 깊이가 깊어졌다. 범위는 줄었지만 하는 일의 임팩트는 오히려 커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있었다.
이 아쉬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고민하던 때에, 갤럽 강점 진단 워크샵(Gallup CliftonStrengths)을 했다. 내 TOP5 강점에 ‘존재감(Significance)’이 있었다.
존재감 테마가 특히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로 비치기를 바랍니다.
존재감 테마에는 위와 같은 문장이 있었다. 존재감 테마가 있는 사람은 ‘존경받고 싶어 하며, 이것이 동기가 되어 존경받을 일을 해낸다’고 했다. 또한, 용의 꼬리 보다는 뱀의 머리가 더 즐거운 사람이라고 하더라.
내 영향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쉽고, 이게 내 동기 부여를 깎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 존재감 강점을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3~40명 정도 이내의 조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3. 내가 비즈니스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곳인가?

마로마브는 VR 프로덕트를 만들다가 청소년 코딩 교육 비즈니스로 피봇했다. 피봇한 비즈니스가 너무 재미없어서 그만뒀다. 지지더블유피는 e스포츠팀을 육성하는 회사였다. ‘스포츠팀’이어서 즐거웠지만 ‘e스포츠팀’이어서 흠뻑 빠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매스프레소는 교육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회사였다. 어릴 때부터 교육 불평등에 문제의식을 많이 느꼈고, 비전에 동감하여 열정을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고객이 아니다 보니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회사의 비즈니스와 프로덕트를 더 깊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걸 느꼈다.
내가 흠뻑 빠질 수 있는 영역에서 사업을 하는 곳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하지 않을 때도 자연스럽게 찾아보는 영역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모빌리티
경기도민으로서 항상 이동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가장 빠르고 편한 이동에 목말라 있었다.
헬스케어
어릴 때부터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오래 잘 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돈을 버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대체 자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세 개의 영역 중 하나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4. 최소한의 안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안정성을 찾는다는 게 다소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안정성은 흑과 백처럼 딱 나뉠 수 있다기보다는 스펙트럼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 0부터 100까지의 ‘안정성 스펙트럼’이 있다면, 적어도 20 이상을 원했다.
스타트업의 안정성을 꽤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낸 게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의 선택이 내 선택보다는 더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안정성 스펙트럼’ 20 이상은 ‘시리즈A 이상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직 어리기 때문에 위 세 개의 기준에 부합하고 이 기준에서만 벗어나 있는 경우 충분히 가슴이 뛴다면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은,

감사하게도 네 개의 회사에서 최종 오퍼를 받았다. 세 군데의 회사는 내 모든 기준에 부합했고, 한 군데는 ‘흠뻑 빠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기준에 조금 벗어났지만, 꽤 재밌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선택을 잘 할 수 있게 기준을 만들어 놓았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기준이 모두 쓸모가 없었다. 김이 빠질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가장 잘 그려지는 곳을 선택했다.
함께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위해 회사의 채용 페이지, 블로그, 구성원들의 이력 등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꼼꼼하게 봤다. 그 진실성은 면접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검증했다. 추가로 더 확인하기 위해 가장 가깝게 일하게 될 피플팀 리더들과 여러 번 더 대화를 나눴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디어코퍼레이션의 피플팀 리더 재석이와는 목적 없는 잡담만 1시간 동안 나누기도 했다.
위 네 가지 기준이 좋은 기준인지 안 좋은 기준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당시의 내가 갈증을 가지고 있던 걸 분류해봤을 뿐이고, 시간이 지난 뒤 사실은 더 중요한 기준이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회사가 정말 많고 나는 선택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는 게 좋은 접근 방법이다. 우선 기준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갈증을 회고할 수 있고, 기준에 부합하는 곳에 간다면 그 갈증을 당장은 해소할 수 있어 만족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번에 세운 기준이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면 다음에는 더 좋은 기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